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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역사 여행을 시작합니다. 한숨 돌리는 기분으로 이번엔 역사 탐방 가볼 만한 곳을 알려드립니다. 선사시대부터 개항기를 거치면서 많은 일들을 겪어온 이곳.. 외의 침략을 잘 막아주었던 곳 바로 강화도입니다.
1. 강화 고인돌 유적지
청동기 대표적인 무덤 고인돌은 고대 거석의 무덤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창, 화순, 강화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강화 고인돌 중에 부근리와 고천리의 고인들은 다른 곳과 달리 지대가 높고 초기 형태가 많습니다. 이곳은 2000년에 선사시대 매장 관행과 한국의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성을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강화 고인돌 유적은 한강 하구 여러 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강화 고인돌은 탁자식 고인돌이고 일부고인돌에서는 열쇠 구멍 모양의 고인돌로 알려진 중앙에 구멍이 있는 관석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고인돌은 당시 지배층의 무덤으로 거대한 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인돌 건축에 있어서 지역적 변이를 보여 선사시대의 지역적 전통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고인돌은 매장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도자기, 청동 공예품, 장신구와 같은 물품을 보관하여 당시 사람들의 물질문화와 종교적 신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물들은 당시 생활모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강화 고인돌 유적지를 방문하셔서 고대 과거로 여행을 즐겨 보시는 건 어떨까요?
2. 외의 침략을 막아낸 요새
강화의 요새 초지진과 덕진진이 있습니다. 초지진은 효종 때 바다로 침략하는 외구를 막기 위해 짓기 시작하여 숙종 때 완성한 요새입니다. 강화도는 한강의 초입에 위치하여 주요 접전지가 되었습니다. 1866년 천주교 신자들의 박해와 프랑스 선교사를 죽인 병인양요로 인해 프랑스 군대가 침략한 병인양요, 1871년 통상 수교를 요구하는 미국의 침략인 신미양요, 1875년 조선을 정복하려는 야욕으로 운요호 사건을 일으키고 조선을 침략한 일본 이렇게 수차례의 전쟁을 치렀던 곳입니다.
초지진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덕지진이 있습니다. 초지진과 함께 덕지진도 외의 침략을 막아 냈던 요새입니다. 덕지진은 병인양요 때 양헌수가 프랑스 군대를 막아내는 장소로 유명합니다. 신미양요 때 덕지진은 미군에 의해 점령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덕진진에서 조금만 더 가다 보면 광보성이 나옵니다. 광보성은 몽골의 침략을 대항하기 위해 흙과 돌을 섞어 외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광보성은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고 어재연 장군과 병사의 활약을 보여줬던 곳입니다. 미국의 신무기에 비해 열악한 우리 군의 무기로 전력을 다 해보지만 미군 3명 전사에 우리는 어재연 장군과 300여 명의 군사들이 전멸을 하게 됩니다. 우리 포는 그저 배에 구멍을 뚫을 수 있는 역할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니 이런 무기로 끝까지 항쟁한 당시 군사들이 대단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렇게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는 한양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차단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3. 한국 최초의 성당
강화에 가시면 한국 최초의 성당인 성공회 강화성당이 있습니다. 강화 성당은 대한제국시대에 새워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어진 한옥 형식으로 지어진 성당이며 대한민국의 사적 제42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성당 내부는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외부는 불교사찰의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팔각지붕으로 지어졌으며 현판은 천주성전이라고 한문으로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를 상징하는 보리수나무와 유교를 상징하는 회화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강화 성당은 토착화를 위해 이러한 형식들을 접목했으며 지금도 지역사회의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동서 문화를 합쳐놓은 곳입니다.
또 다른 유적지로 철종이 5년간 머물렀던 강화에 용흥궁이 있습니다. 역적의 아들 이원범이 철종이 되었다니 놀랍네요. 용흥군의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직접 썼다고 합니다. 원래는 초가집이었던 것을 왕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후에 지금의 기와집으로 개축되었습니다. 그 외의 강화 역사박물관, 삼랑성, 고려궁지. 전등사 등이 있습니다.
* 오디어 가이드와 함께하는 오디 애플리케이션과 함께 역사 여행 떠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