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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수만은 외침을 어떻게 방어하고 물리쳤는지 고려의 외교 활동을 알아보고 고려에 대한 원나라의 간섭은 어떻게 대응 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고려의 외교 활동

고려는 500년 동안 끊임없는 외침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냈습니다. 지금부터 어떻게 싸워서 이겨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거란은 고려는 신라를 계승한 나라니 서경을 포함한 고구려 땅을 다시 찾겠다는 명목으로 1차 침입을 합니다. 거란에게 땅을 떼어주고 좋게 끝내 자라는 의견들 중에 서희가 대응해보지도 않고 우리 뒤에 오는 사람들이 우리의 지금 모습을 평가할 때 얼마나 부끄럽겠는가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희가 거란 장수인 소손녕과 대화중에 거란은 고려를 치려 온 것이 아니고 송과 친한 고려의 관계를 끊기 위한 목적임을 눈치를 챕니다. 거란이 송을 공격했을 때 고려가 송을 도와주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지요. 거란과 관계를 맺는 조건으로 여진이 관리하는 강동 6주를 넘기라는 서희의 말에 거란은 그렇게 합니다. 이것이 무력적인 전쟁없이 전쟁을 끝낸 서희의 담판이라고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고려는 거란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강조의 변을 빌미로 거란이 또 침략합니다. 이때도 양규의 활약으로 거란은 물러갑니다. 하지만 또 거란은 약속을 지키지 않자 거란은 대군을 몰고 3차 침입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강감찬 장군은 귀주에서 대승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귀주대첩이죠. 이렇게 거란의 자즌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막아 보자 하는 마음으로 초조대장경을 만고 광군이라는 특수부대를 만듭니다. 그리고 강동 6주를 확보하고 천리장성을 쌓게 됩니다. 천리장성은 거란뿐만 아니라 여진도 방어하기 위한 것입니다. 거란의 침입을 잘 막아낸 고려는 이제 여진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됩니다. 여진을 대비하여 윤관은 기병, 보경, 항마군으로 나뉜 별무반을 조직하고 활발한 활동으로 여진의 동북 9성을 확보하지만 관리가 힘들고 여진족의 청으로 다시 돌려주게 됩니다. 이후 여진족이 세력이 커져서 금나라가 되고 고려에게 사대를 요구에 이자겸, 김부식은 이 요구를 받아드리죠. 하지만 금사대를 반대하는 세력에서는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일으키지만 김부식에 의해 진압됩니다. 왜 이렇게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괴롭힐까요? 이번엔 몽골입니다. 이때는 고려가 무신정권의 시대입니다. 최우는 기마경이 우세한 몽골을 대적하기 위해 강화도로 천도합니다. 그러면서 방어 대비가 안 되어 있던 육지에 남아있는 백성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초조대장경과 황룡사 9층 목탑을 불태워버립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들은 당하고만 있지 않고 목숨을 다해 맞섭니다. 대표적으로 김윤후가 처인성과 충주에서도 노비들과 함께 그리고 다인철소에서도 승리를 거둡니다. 이러면서 최우는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천도합니다. 그런 와중에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는 강화도, 진도를 거쳐 제주도에서 끝까지 몽골과 대적합니다. 몽골에 의해 불타버린 초조대장경 대신 이번엔 그 유명한 팔만대장경을 만듭니다. 이런 과정에서 쌍성총관부와 동녕부, 탐라총관부의 설치로 고려는 원의 간섭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원의 부마국으로 고려왕들이 원나라 공주들과 결혼해야 하고 충성하는 왕이라는 의미로 왕 이름에 충자를 사용하게 합니다. 2성 6부는 첨의부, 4사, 밀직사로 개편합니다. 다루가치를 파견하여 내정간섭을 시작합니다. 개경에 정동행성을 설치하여 고려와 함께 일본을 침략하지만 성공하지 못합니다. 원은 공녀를 요구합니다. 변발, 호복 등 몽골 풍습이 유행하게 됩니다. 이 시기 원의 편에 선 권문세족이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2. 원나라의 간섭

이런 과정에서 쌍성총관부와 동녕부, 탐라총관부의 설치로 고려는 원의 간섭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원의 부마국으로 고려왕들이 원나라 공주들과 결혼해야 하고 충성하는 왕이라는 의미로 왕 이름에 충자를 사용하게 합니다. 2성 6부는 첨의부, 4사, 밀직사로 개편합니다. 다루가치를 파견하여 내정간섭을 시작합니다. 개경에 정동행성을 설치하여 고려와 함께 일본을 침략하지만 성공하지 못합니다. 원은 공녀를 요구합니다. 변발, 호복 등 몽골 풍습이 유행하게 됩니다. 이시기 원의 편에서 권문세족이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에 반원 자주정책을 펼친 공민왕이 있었습니다. 공민왕 역시 몽골 공주인 노국대장공주와 결혼했고 공주를 많이 사랑했다고 합니다. 공민왕이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되찾습니다. 정동행성과 이무소와 당시 유행했던 몽골풍도 폐지합니다. 원나라 순제의 황후가 된 기황후의 오빠인 기철은 동생의 권력을 등에 없고 횡포를 일삼았습니다, 그런 기철을 공민왕이 숙청합니다. 그리고 권문세족들이 소유했던 대농장을 몰수하고 토지와 백성을 원래대로 돌리면서 국가 재정 확보와 왕권강화에 도움 되는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합니다. 당연히 이러한 개혁들은 권문세족들의 심한 반발을 사고 결국 공민왕은 권문세독들에 의해 피살되고 맙니다. 왜 이렇게 훌륭하고 작한 사람들은 오래 살지 못할까요?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공민왕의 이러한 노력은 헛되지 않고 성리학을 연구하는 신지사대부가 등장하고 이 사람들이 다음시대를 이끌어가는 주역이 됩니다.

 

고려의 외교 활동으로는 거란, 여진, 몽골의 계속 되는 침략에도 백성들과 의병들이 싸워주어 고려를 지킬 수 있었고 조정의 어리석은 관료들 때문에 원나라의 무리한 요구들을 들어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