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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제 활동이 어떻게 변화는지 알아봅니다. 세금의 변화, 이앙법을 이용해 농사 짓는 모습, 중농억상 정책이었던 조선 전기와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1. 조선 후기 경제활동의 발달

조선 전기 조세는 과전법과 공법을 거쳐 후기 인조 때 1 결당 4~6두로 정해진 영정법으로 바뀝니다. 그 지역의 특산물을 세금으로 내는 공납을 대신 내주는 방납이 생겨납니다. 지역 주민들이 세금을 내기 위해서는 방납 업자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방납업자와 지역 관료들 사이에 부정부패가 생깁니다. 이런 방납의 폐단을 막기 위해 특산물 대신 쌀 또는 옷감 등으로 대신 내는 대동법을 만들게 됩니다. 대동법 시행은 광해군과 함께 이원이의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김육은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공납에는 방납업자가 등장하듯이 대동법에는 공인인 등장 합니다. 공인은 세금으로 거둔 쌀로 물건을 사람입니다. 큰 변화로는 공인이 생기면서 자급자족이 아닌 지금처럼 물건을 팔기 위해 물건을 만듦으로 인해 우리 경제활동의 큰 흐름을 바꾸게 됩니다. 1년에 2 필하던 것을 1년에 1 필로 영조 때 균역법을 실시합니다. 이 결과 예산이 부족하여 보충하기 위해 어장세, 염세, 선박세 등으로 세금을 부과하게 됩니다. 이런 세금은 특권층들만 가지고 있어서 그동안 세금을 내지 않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러니 부토지에 세금을 매기는 결작도 시행합니다. 조선 후기에는 토지에 세금이 집중된 전세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2. 조선 후기 농업

조선 후기 농업은 많은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합니다. 밭농사는 2년 3작을 했으며 수익이 높은 담배, 약재, 인삼, 면화 등 상품작물 재배하기 시작합니다. 담배는 임진왜란 전후로 일본인들에 의해 조선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담배의 중독성 때문인지 상품작물 중에 담배가 제일 수익이 높았다고 합니다. 상품작물과 더불어 백성들의 굶주린 허기를 달래줄 고구마는 일본에서, 감자는 청나라에서 들어옵니다. 고구마와 감자 같은 구황작물도 재배합니다. 그리고 고랑에 씨를 뿌려 재배하는 골뿌림법이란 새로운 농사법이 등장하고 노동력은 줄이고 수확량은 늘어납니다. 논농사는 씨를 직접 뿌리는 직파법에서 임진왜란 이후 일부 지역에만 한정되어 있던 이앙법이 전국으로 확산됩니다. 이앙법, 즉 모내기 법은 벼농사 수확을 끝내고 보리농사를 하니 이모작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앙법은 직파법과 달리 벼 사이에 잡초를 쉽게 구분할 수 있어서 많은 일손이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골뿌림법과 같이 노동력은 줄이고 생산량을 크게 늘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변화는 지대를 내야 했던 소작농들은 타조법에서 도조법으로 바뀝니다. 타조법은 생산량의 반을 지주에게 줬다면 도조법은 지주와 계약으로 이루어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많은 일손이 필요 없게 되면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다른 일을 해야 하거나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후기 농서로는 농가집성과 상품작물 재배를 위한 색경이 있습니다. 이러한 조선 후기 농사의 변화는 조선 사회의 큰 변화를 주며 그 영향이 지금까지도 미치고 있습니다.

 

 

 

3. 조선 후기 상업, 수공업, 광업

농업의 발달로 상업도 많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조선 전기에는 중농억상 정책이었고 상인에는 국가에서 허락한 관허상인과 자영업자인 사상이 있습니다. 관헌상인에는 종로에서 특권을 받은 시전상인과 지방을 다니며 물건을 파는 보부상이 있습니다. 후기에는 대동법으로 생겨난 공인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특권을 누렸던 시전상인을 폐지하는 금란정권을 실시합니다. 보부상들은 적국적으로 유통망을 형성하게 됩니다. 사극에서 보면 이런 유통망을 통해 소식도 전달하고 사람도 찾는 모습을 불 수 있었습니다. 사상에는 의주만상, 경상상인, 개성송상, 동래내상이 대표적입니다. 중간 상인으로 중계를 담당한 객주와 숙박을 담당한 여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세 상인으로 난전이 있습니다. 여기서 공인과 거상들을 독점적 도매상인으로 도고라고 불리었습니다. 조선 후기는 국내의 상업 발달과 함께 일본이나 청나라와도 활발한 무역을 합니다. 이렇게 상업이 발달하면서 돈의 필요성을 깨닫고 상평통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일부 부자들은 쌀을 창고에 모아놓듯 상평통보를 모아두어 시중에 동전이 부족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리하여 물가는 떨어지고 화폐가치가 올라가는 전황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조선 후기는 군역의 요역화 현상으로 부역제의 해이 현상이 나타납니다. 상업의 발달로 물건을 수공업도 발달합니다. 이제부터 전문적인 수공업 문화가 발달하게 됩니다. 민영수공업자를 비롯해 독립 수공업자들도 등장합니다. 이렇게 수공업자들이 늘어나면서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필요한 에너지 보급을 담당하는 광업에서는 민영광산이 활성화됩니다, 이앙법으로 일자릴 잃게 된 농부들이 광산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만 농사짓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채굴을 금지하는 설점수세를 실시합니다. 하지만 몰래 채굴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죠.

 

조선 후기 경제활동의 변화를 알아보았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농사를 장려하하지만 후기에는 이앙법을 통해 쌀 생산량이 많이 늘면서 농업의 발달이 상업의 발달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면서 많은 상인들이 생기고 양반은 아니지만 부를 가진 상인들의 새로운 시분이 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