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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백성의 저항은 왜 일어났을까요? 조선은 부정부패와 탐관오리들로 인해 농민들이 힘든 시기를 보냅니다. 부조리와 신분 차별을 받던 사람들이 어떻게 대항하는지 알아보고 새롭게 등장하는 학문 실학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1. 조선 백성의 저항 홍경래의 난
조선 백성의 저항 홍경래의 난은 평안도 일대에서 일어난 농민항쟁입니다. 평안도는 지리적으로 산간 지대가 많아 농업이 힘들었지만 중국과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서 상업이 발달한 지역입니다. 그리고 금과 은의 채굴로 부를 쌓은 새로운 사회계층이 생겨납니다. 이들은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었지만 원래부터 양반이었던 원향과의 대립과 지방관들의 수탈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안도는 유배를 와서 정착하여 가문을 형성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평안도의 차별을 부추기게 됩니다. 과거에 합격을 해도 주요직으로 오르기 힘들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이 지역차별의 원인으로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게 됩니다. 평민 출신인 홍경래를 비롯해 상인 우군칙, 양반 김사용, 김창시, 노비 출신 부호가 이희저, 평민출신 홍총각 등이 함께 힘을 합칩니다. 신분은 다양했지만 자신들이 갖고 있는 각자의 장점들을 살려 난을 일으킵니다. 이들은 자금조달, 군졸모집, 세력가들과 행정 실무자들을 포섭, 비밀 군사 기지를 설치하는 등 10년 동안 철저하게 난을 준비합니다.
이것으로 보아 홍경래의 난은 철저하게 계획된 난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난을 일으키는 목적도 확실하겠죠. 처음에 여러 곳을 점령하지만 내부의 갈등과 대립으로 혼란한 틈에 관군에 의해 진압되고 관련자들은 모두 사형에 처하고 가족들은 노비가 되었습니다. 조정에서는 난이 일어난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았습니다.
2. 임술 농민 봉기
홍경래의 난은 서북지역에서 일어났지만 임술 농민 봉기는 진중에서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됩니다. 조선 후기 철종 때 세도정치가 득세할 기시에 삼정의 문란으로 부패한 관리들의 횡포로 백성들은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주의 탐관오리인 백낙신이 세금을 빼돌리고 그것을 충당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많은 세금을 거두려 하자 억울한 농민들은 비변사에 호소하지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유계춘을 중심으로 난은 시작됩니다. 이들은 탐관오리 백낙신을 비롯해 부정부패한 향리, 양반 등의 집을 불태우고 같이 참여하는 농민들이 늘어났습니다. 진주성을 점령하기도 합니다. 이 봉기는 진주에만 그치지 않고 전국으로 확산되자 정부에서는 심각성을 느끼고 대책을 마련합니다. 정부에서는 안핵사로 파견 된 박규수는 백낙신의 부정부패를 알게 되고 백낙신은 재산 몰수에 유배를 가게 됩니다.
또한 관청을 만들어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려 했지만 당시의 세도정치로 인해 힘들었습니다. 임술 농민 봉기는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농민들의 의식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훗날 농민 봉기의 시발점이 되는 중요한 항쟁입니다. 이러면서 조선 시대의 신분제도는 조금씩 무너져 갑니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발판입니다.
3. 조선후기 실학
홍경래의 난과, 임술 농민 봉기 등 신분차별과 부정부패에 대한 난은 당시 조선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관심이 더 해지고 그로 인해 새롭게 등장한 학문이 생겨납니다. 지행합일을 주장하며 정제두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양명학입니다. 양명학은 가진 자들의 소유물인 성리학의 이념에 반하여 실행을 중요시하는 학문입니다. 양명학을 주장한 정제두는 강화도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그의 영향을 강화학파가 형성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성리학의 대안 학문으로 실용적인 학문인 실학이 등장합니다. 실학은 실제 학문으로 우리 민족의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학문을 연구하게 됩니다. 실학은 농업을 통해 백성들을 살피려는 중농학파와 상공업의 발달로 사람들의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난 중상학파로 나뉩니다. 중농학파는 토지개혁을 주장합니다. 토지를 분배하여 자영농들을 육성해 농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먼저 반계수록의 저자 유형원은 균전론으로 신분에 따라 토지균등배분, 과거제 폐지, 신분 세습 탈피와 기회균등 등 많은 제도 개편을 주장합니다. 훗날 유형원의 제자 이익은 유형원의 주장을 보완을 위한 한전론을 주장하고 성호사설을 펴냅니다. 또한 6개의 적폐로 양반, 과거, 노비, 승려, 미신, 게으름을 들었습니다. 또 한명의 대표적인 실학자 다산 정약용입니다. 정약용의 유명한 저서로는 경제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 자산어보가 있습니다.
그 외 수 많은 저서를 펴냅니다. 정약용은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경작하여 노동량에 따라 분배하는 여전론을 주장하지만 후에는 정전제로 바꾸어 주장합니다. 중상학파는 북학파라고도 불리며 청의 문물을 수용하고 상공업을 발전시키자고 주장합니다. 중상학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열하일기의 저자 박지원은 수례, 선박, 화폐의 사용을 주장합니다. 또 주요인물은 북학의 저자 박제가는 박지원과 같이 수례, 선박과 적당한 소비의 필요성으로 소비론을 주장합니다. 유수원의 우서라는 저서가 있으며 직업적 신분 평등을 주장합니다. 힘하경륜, 의사문답의 저자인 홍대용은 혼천의를 만들고 지전설을 주장합니다. 이제부터 조선을 넘어 세계를 넘어 우주를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조선 후기 백성의 저항은 비록 실패했지만 조선 후기 세도정치와 부정부패 등으로 자신들의 권력과 재산를 지키려는 지배층과 맞서 싸우며 의식이 향상되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