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만세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은 3.1 운동을 계기로 일어나게 됩니다. 이 운동들은 많은 학생들을 포함한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한 항일 운동으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대중운동 1920년대는 조직화된 단체들의 저항운동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저항운동이 일어납니다. 먼저 학생들이 주도한 운동으로 1926년 6.10 만세운동이 있습니다. 3.1 운동은 고중의 장례식 날에 일어났고 6.10 만세운동은 고종의 아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례식 날에 일어납니다. 아무래도 장례식 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일제의 감시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요? 6.10 만세운동은 이병립, 이선호, 박하균, 박두종 등을 중심으로 천도교, 조선공산당과 학생들이 함께 계획하고 준비하여 실..
일제강점기 1920년대 저항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3.1 운동으로 일제가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꾸게 됩니다. 표면적으로는 완화된 느낌이지만 자세히 드려다 보면 우리민족의 혼을 말살시키려는 정책입니다. 1910년대의 저항과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겠습니다. 1. 민족주의 저항 1920년대에는 1910년에 비해 다양한 저항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시기에 회사령과 관세가 폐지되면 일본의 큰 회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고 이러면서 국내 회사들은 맞서 싸우기는 힘겨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물건을 사용하자라는 물산장려운동을 실시합니다. 물산장려운동은 평양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수요가 많아지면서 가격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이 발행합니다. 그리하여 물가가 인상된 물산장려운동은 일반 시민이 아닌 자본가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임시정부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이 망명정부는 민족의 희망의 등불이 되어 독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임시정부가 민족독립을 위해 어떠한 활동들을 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3.1 운동으로 많은 변화들이 생기고 그 정신을 이어나기기 위해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창설 됩니다. 상하이는 치외법권이 적용되기 때문에 독립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국내보다는 자유로운 장점이 있었습니다. 신석우는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 라고 제안하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합니다. 여운형은 조선인민공화국으로 국호를 주장했지만 4월 11일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초대 국무총리를 이승만으로 한 임시정부가 수립됩니다...
일제강점기 1910년대 우리 민족의 저항과 3.1 운동이 끼친 영향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고 우리 민족의 독립을 향한 열망과 희생을 되돌아보겠습니다. 1. 1910년대 국외에서의 저항 활동 국외에서는 항일무장투쟁과 정부 수립을 위해 기지를 만들고 준비했습니다. 서간도 지역에서는 신민회 회원들이 경학사라는 후원단체를 만듭니다. 명문가문의 우당 이회영과 6형제는 경술국치 이후 가족과 친척들을 데리고 만주로 갑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항일 투쟁의 기틀을 마련 하기 위해 후원단체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게 됩니다. 신흥무관학교를 통해 서로군정서라는 조직이 만들어집니다. 북간도의 활약으로는 후원단체로 대종교가 후원하는 중광단이 있습니다. 이곳의 서전서숙 대표적인 학교이고 이어서 명동학교가 세워집니다. 헤이그 특사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