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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35년의 수많은 저항과 희생 끝에 마침내 우리 민족의 열망인 광복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열강 국가들의 의한 분단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광복 전후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38선이 그어진 한반도 지도
38선 (출처 : 더위키)

 

1. 카이로회담

일본의 갑작스런 패망으로 열강들에 의해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는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그리고 1943년에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중국의 장제스가 일본의 패망 후 영토처리를 여부를 논의하는 카이로 회담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이 약속이 됩니다. 한국광복군의 진공작전 계획은 실행되기 전에 일본이 패망하여 자주독립을 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민족의 수많은 저항과 희생이 있었기에 일제 식민지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1945년 얄타회담에서는 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 참전이 결정되고 미국이 한반도를 소련에 넘겨주려고 했다는데... 그러면서 우리는 민족은 1945년에 광복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반쪽자리 광복이라고 할까요? 38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으로 나뉘는 분단 국가되고 맙니다.

 

 

2. 1945년 광복! 하지만 남북의 분단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우리 민족은 광복을 맞이 하지만 온전한 광복이 아닌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점령하게 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리하여 여윤형이 이끈 조선건국동맹은 조선건국위원회를 만들어 치안유지의 중요성으로 주장합니다. 조선건국위원회는 미국이 들어오기 전에 조선인민공화국이라는 행정부를 선포하고 지방은 인민위원회를 구성하여 전국을 장악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미국이 들어오면서 미군정 이외의 행정 조직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가 세운 조선인민공화곡, 인민위원회 그리고 임시정부까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김구를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의 자격이 아닌 개인의 자격으로 입국 허가를 합니다. 미군정은 한국의 안정을 위한다는 명목 맥아더 포고문에 의해 친일파 세력들을 처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의 일제 청산을 하지 못하 채 미국, 소련, 영국이 주최하는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가 개최됩니다. 이 회의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일정 기간 신탁통치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미소 공동위원호를 결정합니다. 임시정부만 수립되면 신탁통치는 줄어들 거라고 예상한 박현영이 이끈 좌익세력은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를 지지합니다. 하지만 이승만과 김구가 주도한 우익세력은 신탁통치는 있을 수 없다고 하며 반대합니다. 이러면서 좌와 우익의 대립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처벌되지 않은 친일파 세력은 우익세력으로 합류하여 힘을 보태면서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어 나갑니다. 1946년 1차 미소 공동위원회의 참석자격조건으로 미국과 소련이 대립으로 회의는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이러면서 이승만은 남한만이라도 정부를 만들어 소련을 격퇴시키자고 주장에 분단의 우려를 느낀 여운형과 김규식은 좌우 합작 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좌우 합작 7원칙에는 남북을 통한 좌우 합작으로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 미소 공동위원회 속개 요청하는 공동성명발표, 친일파 처단 등을 주장합니다. 좌, 우익의 대표들이 미 참여와 미군정의 지지 철회 그리고 여운형의 암살로 좌우합작 운동은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1947년 트르먼 독트린 (냉전선언)으로 2차 미소공동위원회는 결렬되고 미국은 한반도의 문제를 UN으로 넘기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마침내 광복이 이루어지고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나면 모든 것들이 좋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저항하고 싸웠는데... 하지만 남북분단이라는 또 다른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