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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미국과 소련이 참가국 자격 문제로 결렬되면서 미국은 남북의 문제를 UN으로 넘기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문제를 왜 미국, 소련 그리고 UN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나라의 힘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 UN으로 넘어간 한반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대한민국 최초 보통선거 5.10총선거

 

 

1. UN의 결정

한반도의 문제를 넘겨받은 UN 총회에서는 인구 비례해서 총선거를 치르도록 합니다. 그리고 UN에서는 한국임시위원단을 파견하지만 소련은 북측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소련은 당시 미국이 주도하고 인구가 많은 남측에 정부가 세워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1948년에 UN 소총회가 다시 열리게 되고 가능 지역에서 만이라도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하여 국회의원을 뽑는 5.10 총선거를 치르게 됩니다. 5.10 총선거는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선거라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계급, 신분 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선거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2. 5.10 총선거

이러한 UN의 결정은 우리나라를 혼돈에 빠뜨리게 됩니다. 남한의 단독정부수립에 찬성하는 이승만 세력과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한 김구 세력의 대립이 심화됩니다. 하지만 5.10 총선거가 이루어지면 남과 북이 갈라진다는 것을 걱정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독립운동가들이 원하던 조국의 독립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구 선생이었습니다. 김구 선생은 "나는 3.8선을 베고 스러질지언정,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참여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5.10 총선거를 격렬하게 반대하는 좌익세력을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경찰과 군인들이 투입되어 민간이들까지 많은 희생자를 낸 제주도 4.3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어떻게 이념의 차이로 같은 민족을 이렇게 할 수 있었는지? 이러려고 일제와 맞서면서 독립운동을 했는지? 자괴감을 들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구와 김규식은 총선거 반대를 위해 남북협상을 위해 김일성을 만나러 북으로 갔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결국 5.10 총선거는 제헌헌법이 만들어지고 간접선거에 의해 대통령을 뽑기로 결정합니다. 선거인 명부 등록자의 95.5%가 투표에 참가했으며, 선거권은 만 21세 이상의 남녀 모두에게 부여되고 피선거권은 만 25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인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국회에 의해 선출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됩니다.

 

3. 대한민국 정부수립

5.10 총선거를 치르고 남쪽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북쪽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됩니다. 이러면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눠지게 되고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해 반민특별위원회가 만들지만 이승만 정부의 비협조로 실행되지 못합니다. 당시 상황이 남북의 대치상황에서 반민족 행위자의 처벌은 다음으로 미루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국회 프락치 사건이 발생합니다. 반민특별위원회 위원들이 간첩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입니다. 이러면서 안타깝게도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하고 반민특별위원회를 해체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