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제강점기 1920년대 저항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3.1 운동으로 일제가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꾸게 됩니다. 표면적으로는 완화된 느낌이지만 자세히 드려다 보면 우리민족의 혼을 말살시키려는 정책입니다. 1910년대의 저항과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겠습니다.

 

일제강점기1920년대저항

 

1. 민족주의 저항 <실력양성운동>

1920년대에는 1910년에 비해 다양한 저항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시기에 회사령과 관세가 폐지되면 일본의 큰 회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고 이러면서 국내 회사들은 맞서 싸우기는 힘겨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물건을 사용하자라는 물산장려운동을 실시합니다. 물산장려운동은 평양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수요가 많아지면서 가격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이 발행합니다. 그리하여 물가가 인상된 물산장려운동은 일반 시민이 아닌 자본가들을 위한 운동이라며 반대 세력인 사회주의가 비판하고 나섭니다. 그래서 물산장려운동은 성공하지는 못합니다. 한일간 학재를 동일시하는 2차 교육령으로 이상재를 중심으로 민립대학설립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일본의 방해로 성공하지 못하고 일본에 의해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됩니다. 다음은 문맹퇴치운동으로 문자보급운동을 시행합니다. 이렇게 민주주의 진영에서는 이러한 실력양성운동으로 일제에 대한 저항 운동을 펼쳤습니다.

2. 사회주의 저항 <쟁의>

1923년 동안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도에서 소작인들의 농민항쟁인 암태도 소작쟁의가 일어납니다. 식민성 지주인 문재철은 일제의 식민수탈정책에 동참하여 많은 토지를 소유하게 됩니다. 문재철은 소작인들에게 너무나 과한 소작료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소작인들은 소작료 인하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하고 추수거부와 소작료 불납동맹을 하게 됩니다. 일본 경찰의 위협에도 항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항쟁은 약 1년간 지속됩니다. 언론에 의해 이 항쟁이 전국으로 알려지고 각계각층의 관심으로 사회문제로 번지는 것을 염려한 일본은 중재를 시작하고 마침내 마태도 소작쟁의는 성공합니다. 이후 소작쟁의가 일어날 수 있는 불씨가 되어 다른 지역에서도 소작쟁의가 일어납니다. 노동자들에게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조선 노동 총동맹을 만듭니다. 노동자들의 대규모 총파업중 대표적인 것은 원산노동자총파업입니다. 이 파업은 2,200여명의 참여로 사상 최대 규모의 총파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28년 영국인이 운영한 문평제유공장의 일본인 간부에 의해 차별 받던 조선인 노동자들이 개선을 요구하면서 시작됩니다. 최저임금제 확립, 8시간 근무, 대우개선, 단체계약권 확립 등을 요구합니다. 이 파업은 다른 업종의 노동자들까지 참여가 이루어지고 해외의 노동단체들의 후원과 지지를 받게 됩니다. 파업 중에 노동자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많은 사람들이 잡혀 가게 됩니다. 원산노동자총파업은 성공하지 못하지만 한국노동운동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3. 신간회의 활동

실력양성운동과 소작, 노동 쟁의 과정에서 새로운 진영들이 생겨납니다. 실력양성운동에서는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쟁의에서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자들이 이념은 다르지만 우리의 한 가지 목표인 독립을 위해 함께 활동하기로 선언합니다. 그리하여 1927년 민족유일당운동의 일환으로 좌우합작 조직인 신간회가 이상재를 대표로하여 설립됩니다. 참고로 1910년데 신민회는 비밀결사조직단체이었지만 신간회는 공개단체로 전국적으로 지회를 운영합니다.

 

 

신간회의 특징 중 하나는 자매단체로 여성들의 단체인 근우회가 함께 활동하게 됩니다. 신간회의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을 후원하게 되고 진상조사단을 파견하고 민중대회를 개최합니다. 이로 인해 일본으로부터 압박과 내부에서의 갈등과 대립으로 1931년 신간회는 해소, 즉 더 나은 조직을 만들기 위해 잠시 해체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신간회는 4년간의 활동들이 멈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간회는 재결성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신간회가 해체하지 않고 좀 더 활동을 계속 했더라면 우리 민족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하지만 이러한 신간회의 민족유일당운동이라는 정신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제의 탄압은 농민, 노동 어디에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고 우리 민족은 자유와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항쟁하고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이룬 자유와 독립을 우리 후손들이 잘 지켜내야 하지 않을까요?

 

 

 

 

 

일제강점기 1910년대 저항 <3.1 운동. 유관순 열사>

일제강점기 1910년대 우리 민족의 저항과 3.1 운동이 끼친 영향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고 우리 민족의 독립을 향한 열망과 희생을 되돌아보겠습니다. 1. 1910년대 국외에서의 저항 활동 국외에서

leohappy.com

 

 

 

일제강점기 1930년대 저항 <김구, 윤동주 ... >

일제 강점기의 마지막 1930년대의 저항을 알아보겠습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일제에 저항을 했던 것일까요? 바로 후손들을 위해서 자신들의 젊음과 미래를 받쳤을 것을 기

leohappy.com